입법의 시간―①중대재해기업처벌법
우리 삶 바꿀 ‘입법의 골든타임’
우리 삶 바꿀 ‘입법의 골든타임’
국감 일정 마무리한 첫 정기국회
민주당, 세밀한 입법 전략 필요
촛불혁명이 요구한 개혁 과제들
이뤄낼 최적이자 최후의 시간
민생 놓친 과거 정권 교훈 삼아
코로나 시대 준비할 ‘밑돌’ 놔야
이천 창고 화재 38명 숨졌는데
과실치사 기소는 팀장급 1명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인명사고 때 형사처벌 강화하고
3~10배 징벌적 손배 묻도록 해
미리 안전 유도하자는 취지 입법 논의 어디까지 왔나
정의당·노동계안 발의된 상태
이낙연 대표도 “법제정” 약속
올해안 입법될 가능성도 점쳐져 지난 4월 경기도 이천의 물류창고 공사장에서 불이 나 노동자 38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쳤다. 화재위험이 높은 우레탄폼 발포 작업과 배관 용접 작업을 한 공간에서 진행하다가 불티가 튄 탓이었다. 발주처의 집요한 ‘공사기간 단축’ 요구로 시공사와 하청·재하청업체가 한꺼번에 돌관공사(공기 단축을 위해 24시간 집중적으로 공사를 하는 것)에 돌입한 것이 직접적인 사고 원인이 됐다. 당시 경찰은 “원청과 발주처에 그 어떤 사건보다 무거운 책임을 묻겠다”고 별렀지만 공소장은 초라했다. 기소된 사건 책임자 9명 가운데 발주처 소속은 경영기획팀장 1명(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이 전부였다. 안전보건 조치를 줄줄이 어겨서 터진 산재인데도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위반으로 기소된 이는 말단 관리자인 시공사 현장소장과 재하청업체 사업주 둘뿐이었다. 책임 있는 자는 피해 가고 일선 관리자에게만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는 현행 산안법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만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있었다면 달랐을까? “부실한 안전관리의 구조적 원인을 제공한 원청 사업주까지도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었을 테고 원청 기업에도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었겠죠. 어쩌면 무거운 처벌을 피하려고 원청이 애초에 규정을 잘 지켜 사고가 안 났을 수도 있고요.” ‘21대 국회의 정의당 제1호 법안’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대표발의한 강은미 의원의 설명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기업이 사업장이나 다중이용시설·대중교통에 대한 안전·보건조치를 위반해 인명 사고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경영책임자·기업에 형사책임과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물도록 하는 특별법이다.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이 부담해야 할 사고처리 비용이 안전관리 비용보다 더 많이 들도록 함으로써 기업의 안전관리를 유도하자는 취지다. 이 법은 법적 노동자뿐 아니라 임대·용역·도급·위탁 등 계약 형식과 관계없이 ‘일하는 사람들’ 대다수에게 적용된다. 19대·20대 국회에서도 진보정당을 중심으로 발의됐지만 거대 양당의 무관심 속에 자동폐기됐다. 이번 21대 국회에는 강 의원이 발의한 정의당안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본부가 ‘국민동의청원’을 통해 발의한 노동계안이 발의되어 있다. 강 의원이 낸 정의당안은 노회찬 의원안을 뼈대로 중대재해 정의를 구체화하고 전체적으로 처벌 수위를 높였다. 사업주가 유해·위험 방지 의무를 위반해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할 경우에는 3년 이상의 징역 또는 5천만∼10억원의 벌금에 처하고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면 손해액의 3∼10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리는 내용이다. 지난 7월 나온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검토보고서에는 정의당안의 의무 내용이 지나치게 광범위하다거나 처벌이 과도하다는 의견이 담겼는데 정의당은 “수용할 내용은 수용하고 반박할 내용은 반박하면서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라는 태도다. 현행 산안법은 산재 사고가 터질 때마다 땜질식 개정을 거쳐왔지만, 여전히 법적 노동자가 아닌 도급용역노동자를 보호하기 어렵다. 처벌도 지나치게 가벼워 산재 예방 효과가 없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권영국 정의당 노동본부장은 “애초 산안법은 법규 위반에 대한 규율이 목적이지, 기업에 산업재해 책임을 물리는 법이 아니다”라며 “기업 범죄를 제대로 처벌할 별도의 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1981년 제정된 산안법은 2006년에 이르러서야 노동자 사망에 따른 벌칙을 도입했다. 그마저도 법원은 솜방망이 처벌로 벌칙 조항을 무력화해왔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2000년대 초반부터 노동계가 주창해온 ‘구호’였지만 21대 국회에서는 ‘법률’로서 결실 맺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최근 몇년간 산재 사망 사고와 대형 참사가 이어지며 ‘기업 살인’에 대한 국민들의 법감정이 엄격해졌기 때문이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산재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올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청원’이 1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지난 9월 법사위로 넘겨진 것도 변화의 증거다. 더불어민주당이 입장 변화를 보인 점도 큰 진전이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줄곧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약속하면서 연내 입법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구체적인 법안을 준비 중인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한겨레>와 만나 “산업안전, 다중이용시설 안전, 제조물 안전 등을 나눠 개별법들을 묶음으로 발의하려고 했으나 의견 수렴을 해본 결과 특별법을 제정하는 쪽으로 진행하기로 방향을 틀었다”며 “쟁점이 큰 법안인 만큼 당 정책위원회와 조율해 전략을 짤 것”이라고 밝혔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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