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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복의 인물탐구]국제통상변호사 송기호 “아베, 국제분업질서 못 무너뜨려” - 경향신문

[원희복의 인물탐구]국제통상변호사 송기호 “아베, 국제분업질서 못 무너뜨려” - 경향신문

송기호 변호사<br />/이상훈 선임기자

송기호 변호사
/이상훈 선임기자

한국과 일본이 서로를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경제전쟁을 벌이고 있다. 많은 전문가·교수들이 이번 사태의 원인과 해결책을 말하지만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이다. 한 언론전문가는 “제발 일본을 아는 분들은 아베 정부가 왜 저러는지, 그리고 우리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야기가 아닌 논변으로 말해달라”고 공개적으로 하소연할 정도다.(이준웅 서울대 교수·<경향신문> 8월 12일자)

이 중 돋보이는 사람이 있다. ‘국제통상변호사’라는 타이틀을 단 송기호 변호사(56)다. 한·일·대만 변호사들과 다중채무자 구제를 위한 국제공동체 작업을 해온 그는 일본 재계의 ‘작동체계’를 객관적으로 본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그에게 정부·민간·언론 할 것 없이 자문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그는 요즘 며칠째 밤을 새울 정도다. 8월 9일 인터뷰 도중에도 계속 전화가 울려 ‘코멘트’와 ‘보고서 독촉’이 이어졌다.

일본 재계 ‘작동체계’ 객관적 관찰자

-8월 초 직접 일본까지 간 것으로 알고 있다. 현지 분위기는 어떤가. 최근 일본이 포괄허가 취급품목을 지정하지 않고, 또 1개월 만에 수출허가를 내주는 등 조금 완화되는 분위기다.(한국은 8월 12일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맞대응을 했다.)

“이번 조치를 위반하면 10년 이하 징역, 법인에 3억 엔의 벌금, 3년간 수출을 못하는 등 일본 기업에는 엄격한 규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번 조치의 이유로 안보문제를 들고 있지만 정당성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일본 수출기업에 피해가 발생하지 않아 비판이 현재화되지 않았을 뿐 8월 말쯤이면 아베 정부에 부담이 될 것이다. 나는 일본의 이번 조치가 저강도로 갈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아베의 이 조치로 국제 분업질서가 무너지거나 교란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사안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다지만 시일도 오래 걸리고 실효성도 작지 않지 않나.

“이번에 일본 가서 들은 것은 ‘지난번 방사능 수산물 문제를 놓고 WTO에서 패소하더니 이번에 또 지려 하나’였다. 아베는 이번 조치가 WTO에서 또 패소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우리가 WTO에 제소하는 것은 최대한 아베의 조치를 좁히자는 것이다.”

-우리도 맞대응해야 하는데 전문가들은 일본이 수입하는 품목 중 80% 이상 우리가 독점하는 품목은 장미나 파프리카 같은 꽃과 농산품이라고 한다. 결국 일본여행 자제나 일본상품 불매운동, 심지어 시멘트 원료인 연탄재 수입 규제 등의 대응카드밖에 없는 것 아닌가.

“찾아보면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90% 이상 가져가는 것이 있다. 수출기업이 기꺼이 그런 정보를 드러내야 할 필요가 있나.”

-한·일무역은 철저히 하청·조립 수출구조이다. 그래서 ‘가마우지 무역’이라는 비난도 있다. 재벌이 수백조 원의 사내보유금을 쌓아 놓으면서도 소재·부품 중소기업 육성을 게을리한 것도 문제다.

“일본 소재를 수입한 뒤 우리가 부가가치를 굉장히 높여 재수출하기 때문에 가마우지 수출구조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 대기업이 국내 중소기업과 산업생태계를 함께하려 했던 점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중소기업이 아무리 좋은 연구·개발(R&D) 실력을 가졌어도 제품을 납품해 수익을 올려야 한다. 우리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제품 테스트 기회도 주지 않은 점은 반성해야 한다.”

한·일 무역전쟁의 본질은 역사전쟁

송 변호사는 ‘의외로’ 이번 한·일 무역분쟁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깨는 우리의 조치도 현명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영토(독도)를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일본과 지소미아를 체결했다”면서 “아베가 핑계대는 안보는 허구인데 그 허구 때문에 지소미아를 파기하는 것은 논리상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앞서 질문했지만 이번 한·일 경제전쟁은 안보문제라는 ‘외형’을 띠고 있지만 본질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둘러싼 양보할 수 없는 역사전쟁 요소가 강하다.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더해 박근혜가 10억 엔에 종군위안부 문제를 불가역적으로 끝내기로 합의한 것을 폐기한 것이 그것이다. 아베도 이 점을 시인했다.

게다가 한·일 과거사 문제의 시원인 1965년 한·일협정도 그렇지만, 위안부 합의나 지소미아 체결 등 모두 동북아 이익을 염두에 둔 미국의 ‘종용’으로 이뤄진 것이다. 결국 이 싸움에는 미국도 깊숙이 개입돼 있다. 심지어 남북의 급격한 접근에 민감한 일본·미국의 이해관계까지 얽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일 간 무역갈등을 “남북경협으로 푼다”고 발언한 것은 이 같은 맥락을 반영한 것이다. 송 변호사 의견처럼 ‘쉬운 해결’에 기자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그도 이 한·일 무역전쟁의 본질은 역사전쟁이라는 것에 공감했다.

“그렇다. 이 싸움의 본질은 역사문제다. 그러면 역사문제가 왜 생겼느냐. 아베가 일본의 식민지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본질이다. 그리고 아베는 이 평화헌법 체계를 깨려는 것이다. 일본 국민은 우리를 백색국가에서 배제한 것에는 찬성하지만 평화헌법을 깨려는 개헌에는 반대한다. 아베·일본 우익과 평화헌법을 지키려는 다수 일본인은 구별해야 한다. 식민지 지배의 잘못을 인정하고 평화헌법을 유지하려는 다수의 일본 사회와 우리가 함께 가야 한다.”

-우리는 일본의 양심이나 지성 수준이 매우 높은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과거 우리가 공영방송의 모델로 평가하던 NHK는 아베의 충실한 우익 대변인으로 전락했다. 리버럴 신문의 대명사였던 <아사히신문>조차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라는 책을 번역출판할 정도로 보수적으로 변했다. 결국 일본 사회 전체가 우경화한 것은 아닐까. 3연임에 성공해 2021년까지 집권하는 120여년 일본 헌정사상 최장수 총리 아베를 만든 것이 일본 유권자다. 아베는 그런 유권자의 표를 바탕으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게 아닐까. 미국 트럼프 대통령 역시 정치적 이해(연임 등) 때문에 중국과 환율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게 국제사회인 것은 사실이다. 아무리 트럼프나 아베가 국제 룰을 깨뜨리는 행위를 하더라도 그들은 정치인일 뿐이다.”

-정치인이니 표를 의식한다. 외교는 국내정치의 연장선이고 통상도 마찬가지다. 결국 아무리 세계화를 얘기하지만 본질은 자신의 표인 자국의 이익, 결국 민족주의로 귀결되는 것 아닐까.

“우리의 대응이 민족주의여서는 안 된다. 표를 주는 주체들(국민)은 일시적으로 영향을 받겠지만 트럼프나 아베가 착근된 국제 분업질서를 교란시킬 수 있을 정도로 능력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세계화에 부정적 영향도 있지만, 고립적으로 존재할 수는 없다.”

송기호 변호사가 국회에서 이번 한·일 경제전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송기호 변호사가 국회에서 이번 한·일 경제전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송 변호사의 주장에 공감하지만, 세계 무역질서나 국제 분업질서는 자국의 이익보다 후순위다. 세계적으로 횡행하는 우익 포퓰리즘이 그것이다. 미국은 ‘혈맹’이라면서 막대한 군사비 부담을 요구하고, 무기를 판매한다. 그것이 냉혹한 국제사회 논리다. 이는 고민거리지만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 경제구조에서 이를 내수시장을 키우는 계기로 삼는 것도 나쁘지 않다.

무엇보다 한·일 갈등의 원인인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문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우리 정부가 배상하라는 일본 측과 한·일 기업을 통해 보상하자는 우리 측 주장이 맞서고 있다. 일본은 국제중재기구의 판단을 받자는 주장을 했다. 송 변호사도 “아베가 우리 역사에 사과할 가능성은 제로이기 때문에 정부가 논의의 주체가 되기 어렵다”면서 “일본 시민사회와 한국 시민사회가 피해자와 서로 연대하고 소통하는 방법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현 상황에서 이 방법이 그마나 현실적 해결책일 것이다.

송 변호사는 1963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났다. 부모님 모두 초등학교조차 나오지 않은 가난한 농부였다. 초등학교 때 광주로 유학해 광주일고 3학년 때 광주항쟁의 참상을 목격했다. 1981년 대학(서울대 무역학과)에 들어가자마자 운동권이 된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얼마 전 유시민·심재철 진술서 논란에서 ‘비밀조직’이라는 표현으로 등장한 농촌법학회(농법회)가 바로 그가 몸담은 동아리다. 그는 “무학의 부모님은 내가 대학을 졸업하기를 간절히 원했다”면서 “부모의 소망을 무시할 수 없어 적극적 운동권이 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1985년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온 그는 87년 농촌으로 내려갔다. 현장운동이 중시되던 시기였다. 노동·빈민운동은 많았지만 농촌운동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 때문에 고향으로 가지 못했다. 하기야 힘들여 광주·서울로 유학을 보냈더니 시커먼 얼굴로 시골로 와 농사를 짓는 자식을 맘 편히 볼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는 할 수 없이 해남·영암을 전전하며 수박·배추·무 농사를 지었다. 1987년 수세투쟁에 참여하고, 영암지역 농민회(현 전농) 창립대의원으로 나섰다.

하지만 그는 5년 만인 1992년 서울로 돌아왔다. 그는 “객지라 땅도 없는 한계 때문에 농민으로 정착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실 80년대 노동·빈민현장에 뛰어든 학생운동가들은 90년대 초반 사회주의 몰락 이후 대거 철수하는 분위기였다. 그는 회사를 다니다 결혼한 후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 1998년 제40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한·EU, 한·미 FTA에서 발군의 실력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 로펌에 취직해 맡은 소송이 2000년 중국과의 마늘 무역전쟁이다. 중국산 수입마늘 때문에 판로를 잃은 농민들이 정부를 상대로 수입제한 관세 부과를 요구한 것이다. 그는 “월급쟁이 변호사여서 공짜로 변론해 줄 수 없었다”면서 “농민들이 준 마늘을 내가 서울에서 직거래로 현금화, 변호사 비용으로 받았다”고 말했다. ‘운명적’으로 농업·무역 변론을 맡게 된 그는 아예 로펌을 그만두고 1년간 호주로 가서 농업법을 배웠다.

그의 능력이 발휘되기 시작한 것은 2008년 한·미 쇠고기 협상이다. 특히 그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국제통상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한·유럽연합(EU),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국제통상 문제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잘못한 영문 번역을 지적, 외교통상부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아직도 그 소신에는 변함이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렇다, 당시 우리 농업에 대한 진실된 고려가 없었다”면서 “투자자 국가소송제도(ISDS), 농업분야 개도국 지위 모순 등의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FTA 실무책임자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현 문재인 정부 청와대 안보실 2차장인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그는 “그 부분은 지금 뭐라 말할 수 없다(웃음)”면서 “나는 여전히 농업의 관점에서 본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는 송파 청소년 공동체 ‘즐거운 家’ 운영위원, 사단법인 ‘위례’ 이사 등 지역활동을 하다 2017년 문재인 후보 중앙선대위에 참여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그는 정치참여 이유로 “나는 남들이 많이 하지 않은 영역만 했는데 정치는 그렇지 않더라(웃음)”면서 “촛불혁명 이후 이제는 시민들이 더 주도적이고 더 민주적인 정당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6월 송파(을) 재선거에 나서려 했으나 최재성 의원에게 경선에 밀려 당 농어민위원회 부위원장, 포용국가비전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그는 “정치는 서로 충돌하는 이해관계를 이해하고 어떤 것이 더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느냐를 찾는 것”이라며 “시민운동에서는 배우지 못한, 책임감 있게 설득하는 법을 지금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2019-08-17 05:26:00Z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908171426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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