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전 법무부 장관 검증 보도를 계기로 ‘언론개혁’이 우리 사회 화두로 다시 떠올랐다. 속보·단독 경쟁을 일삼으며 검찰이 흘린 정보에 기대 검증 없이 기사를 쏟아내는 언론의 취재 관행은 이번 사태를 통해 그 문제점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촛불 광장에 모인 성난 시민들은 ‘세월호 보도 참사 때를 떠올리게 한다’ ‘기레기들의 검찰 받아쓰기일 뿐’이라고 성토하며, 언론 전체에 심각한 불신을 보인다. <한겨레>는 조국 사태를 둘러싼 언론 보도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향후 대안을 고민해보는 좌담을 마련했다. 강형철 숙명여대 교수,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김준일 뉴스톱 대표 등 전문가 4명이 참여한 좌담은 지난 28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진행됐다.
언론개혁 좌담 ‘조국 그 이후, 언론개혁을 말하다’가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 김준일 뉴스톱 대표, 김언경 민언련 사무처장, 강형철 숙명여대 교수.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조국 검증 보도를 둘러싸고 언론의 단독 경쟁이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9월10~24일 보름 동안의 보도를 민언련이 모니터링한 결과를 보면, 조국 관련 ‘단독’ 보도가 166건이나 됐다. 언론 보도의 문제점부터 짚어보자.
김언경 처음엔 자유한국당 출처의 단독 보도가 많았다면, 수사가 시작된 뒤엔 검찰발 보도가 늘어났다. 검찰발이냐 자유한국당발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의혹이 불거지면 보도에 앞서 확인 절차가 있어야 하는데, 조국 관련 단독 보도 중엔 ‘카더라’성 기사가 많았다. 특히 종편들은 스토킹처럼 집요하고 노골적으로 저질 보도를 일삼았다. 의혹이 사실인지, 사실이라면 ‘무엇이 어떻기 때문에 문제’라는 정확한 해석이 부족했다.
김서중 법무부 장관에 대한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겠지만, 대부분의 기사가 조국에게만 쏠려 있었다. 우리나라에 그 외 다른 일은 없었나. 또 심층 취재보단 단순 보도만 쏟아졌다. 추후 검증, 후속 보도도 드물었다. 짧은 시간에 갖가지 의혹이 제기됐고, 반대쪽에서 ‘아니다’라고 하는데도 사실 여부를 따지는 보도는 거의 없었다. 기자들이 자신이 확보한 정보에 대해 합리적 의심으로 접근했어야 한다.
강형철 전통적인 저널리즘에선 보도를 통해 사건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발생 기사만 보도하기에 정작 시민이 궁금해하는 내용은 빠져 있다. 예를 들어 최성해 동양대 총장이 “나는 도장을 찍은 적 없다”고 했는데, 회사 사장이 모든 사안에 도장을 다 안 찍는 걸 알면서도 상식적이지 않은 기사를 쏟아냈다. 장이 섰으니 주목을 끌기 위해 그런 보도를 한 것이다. 저널리즘에 대한 기대가 무너졌다. 세월호 사건 당시의 문제가 되풀이됐다.
김준일 사실 한국 저널리즘은 항상 엉망이었다. 조국 사태 이전에도 그랬다. 그런데 왜 조국 국면에 심각성이 드러났을까. 그동안은 대중이 그 사실을 몰랐는데 이제야 느끼게 된 거다. 대중이 못 느낀 것이 더 문제다. 또 한가지. 조국 보도의 문제점은 이윤 문제가 크다. 언론들이 왜 그렇게 많은 보도를 했겠나. 다 돈 때문이다. 어뷰징하면 수익으로 연결된다. 클릭을 유도하는 이런 ‘기레기 시스템’을 어떻게 바꿀지 논의해야 한다.
김서중 과거엔 ‘정권의 언론 장악’ 등 핑곗거리라도 있었다. 언론에도 문제가 있지만 정권이 더 큰 문제니 한국방송·문화방송 정상화를 위한 파업에 국민이 공감한 것이다. 그러나 이젠 그 시점을 지났다. 단순히 관행을 바꿔야 좋은 언론이 될 것이란 수준이 아니라 변화 없인 언론이 붕괴할 것이다.
―그동안 정치, 재벌 권력과 언론의 유착이 문제였다면 이번에 검찰과 언론의 유착, 공생 관계가 주목받았다.
강형철 그간 권력기관의 힘은 세고, 기자들이 확보할 수 있는 정보는 적었다. 그렇다 보니 아는 검사를 통해 중요한 정보를 받아쓰면 그게 의로운 기자였다. 문재인 정권에서도 검찰과 언론은 과거 방식과 관습대로 그 유착된 권력을 행사해왔다. 한국 검찰처럼 권력을 쥔 곳이 없다. 검찰에서 고급 정보가 나온다고 생각하니까 그걸 사실이라고 맹신하거나 의존하며 검증 없이 그냥 받아쓰는 거다.
김준일 검찰만 가진 정보가 지나치게 많은데 그 상황을 누가 만들었나. 정치권의 잦은 고소·고발이 검찰에 꽃놀이패를 준 셈이다.
김서중 과거 ‘권력에 의한 억압’이라는 트라우마 때문인지 기자들의 자기 확신이 너무 커졌다. 문제는 검찰의 정보를 받아쓰더라도 최소한의 기본 원칙은 지켰어야 한다는 점이다. 반대 정보가 있으면 자기 보도와 비교해서 필요한 기사는 써야 하는데 우리나라 기자들은 자기 완결성 신화가 강해 기사 정정에 인색하다. 외국은 애프터서비스 기사를 쓰면 더 좋은 평가를 받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 논란 속에 출입처 제도 개선 목소리도 나온다.
김서중 10년 전에 한 정치부 기자가 성향과 관계없이 민주당 출입하면 민주당 기자, 한나라당 출입하면 한나라당 기자로 동화되더라는 말을 하더라. 대기업 출입하면 대기업에 우호적인 시각으로 바뀌는데 본인들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출입처 시스템의 위험성이 있다.
김준일 탈출입처를 해야 한다. 출입처에 앉아 있으면 상상력이 제한된다.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취재원과 물리적·심리적 거리가 가까워야 한다.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매일 써야 할 정해진 콘텐츠의 양을 어떻게 채울지다. 그렇다 보니 브리핑, 티타임 등에서 나온 이야기로 기사를 쓴다. 이런 방식이 출입처주의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강형철 간사 주도 기자단 운영체제를 폐지하자는 건지, 아예 언론사에서 출입처 자체를 없애자는 건지는 다른 문제다. 신문은 매일 나와야 하잖나. 직업적 안정성을 위해 출입처에서 공급하는 뉴스를 채울 수밖에 없는 거다. 만약 지면을 4개 면으로 줄인다면 모를까. 그럴 경우 기자 구조조정이 필요하고, 그다음엔 온라인 유료 모델을 해야 한다.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나.
김서중 문제는 출입처 정보를 받은 이후다. 현안을 딱 정리해주는 기사가 필요하다. 그런 걸 제공해서 언론을 볼 이유를 만들어줘야 한다. 읽을 만한 기사에 역량을 집중했으면 좋겠다.
―이번에 신문·방송 등 기성 언론이 1인 미디어 등 유튜브에 밀렸다는 지적이 있다. 건강한 저널리즘을 위해 바람직한 미디어 지형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다.
김언경 팩트 확인 안 하고, 취재 안 하고 정답 정해놓고 보도하는 방식은 조국 국면만의 문제가 아니다. 김어준이나 ‘알릴레오’ 등으로 대표되는 대안 창구에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유는 ‘왜 이런 이야기는 보도가 안 되지?’라는, 기성 언론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다.
강형철 언론사 스스로 (선정적 보도를 하는) 타블로이드화 되지 말라고 말은 하지만 실천은 어렵다. 언론이 높은 퀄리티의 저널리즘을 보여주면 독자나 시청자는 구독료도 내고 기부금 형태로도 내고 기꺼이 지원한다. <뉴스타파> 등의 사례가 보여준다. <한국방송>(KBS) 등 공영방송은 자본에 휘둘릴 위험이 더 적기 때문에 그 역할이 크다. 공영방송이 잘하면 다른 언론들도 따라갈 수 있다.
김준일 결국 포털을 깨야 한다. 포털로 인해 어뷰징이 극심해진다. 한국 언론 신뢰도가 조사 대상 38개국 가운데 최하위다(한국언론진흥재단·영국 옥스퍼드대학 부설 로이터 저널리즘연구소 공동조사). 그러나 ‘좋아하는 언론사에 비용을 내겠다’는 응답이 가장 높은 나라 1위이기도 하다. 그런데 언론사 홈페이지에서 뉴스를 보는 사람은 4%에 그친다. 포털 시스템이 깨지면 다양한 언론도 생길 것이다.
강형철 포털이 문제를 가중시킨 것은 맞지만,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포털을 보는 이유는 기사를 쉽게 찾고 골라 보기 위해서다. 여러 언론을 봐야 한 사건을 이해할 수 있는 형국이다. 언론이 단편적이고 편향된 정보만을 쏟아내고 있다. 독자는 완결성 있는 정보를 원한다.
김서중 다양한 언론의 존재도 중요하지만 현재 유력 언론들이 사회를 보는 창의 구실을 제대로 해야 한다. 기존 언론들이 차별화된 좋은 기사를 생산해내지 못해 내 입맛에 맞는 확증편향 기사만 찾아간다. 이런 경향이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
김준일 포털을 없애는 것이 언론개혁의 첩경인지도 모르겠고, 없어진다고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좋은 기사를 찾아볼지도 회의적이다. 정부가 언론 기부금 세액 공제를 해주거나 ‘시민 바우처 제도’ 같은 걸 시행해서 그 바우처로 신뢰할 만한 언론을 후원하도록 하는 방안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겠다.
김서중 프랑스에서 사르코지 대통령 시절에, 신문 지원 제도가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때 자신이 원하는 신문을 1년간 무료로 지원했다. 시민들이 좋아하는 언론에 다가갈 수 있는 지원 체계를 만들었다.
강형철 사실 언론의 정파성은 불가피하다. 과거엔 객관주의 저널리즘을 하지 않으면 외면받았으나 지금은 대안적 언론이 많아 내 편이 잘못 걸리면 봐주고 반대편이면 때려주는 식이 아니고선 독자 유지가 어렵다. 품질을 지켜가는 정파성이 있으면 구독층이 넓어진다. 품질평가시스템을 만들어 1면에 얼마나 다양한 기사가 실렸는지 등 여러 요소를 평가해서 지원하는 제도도 검토할 수 있다.
김언경 언론이 무소불위라는 게 문제다. 기사 쓰고 협박하고 광고 받은 뒤 빼주는 사이비 언론도 망하지 않는다. 어뷰징과 지원금으로 버티기 때문이다. 사이비 언론을 소탕하는 것부터 먼저 해야 한다. 당근과 채찍이 동시에 있어야 하는데 지금 언론엔 채찍은 없다. 기자협회나 언론노조 등에서 옥석을 가리는 작업이 필요한데 서로 눈치 보며 비판을 못 하고 있다.
―언론시민단체가 주도하는 미디어개혁위원회 논의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김서중 언론 상황이 굉장히 다층적으로 심각한 위기다. 사업자 차원에서든 언론에 대한 인식의 차이든 모든 당사자가 결부된 문제니까 공론의 장을 통해 언론개혁을 위해 미디어 정책을 종합적으로 그리자는 취지다. 민간이 다수인 상황에서 정부 부처의 참여를 제안했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로 꾸려지기를 기대한다.
김언경 또 하나의 그저 그런 위원회가 되지 않기 위해 당사자들끼리의 대타협이 아닌 언론 소비자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구조가 됐으면 한다.
―조국 이후 언론을 바꾸어야 한다는 열망이 크다. 이 시점에서 언론개혁의 시발점은 무엇이 돼야 할까?
강형철 이번 기회에 언론사들이 보도 준칙이나 강령을 정비하고 조국 보도와 관련해 백서를 만들어 자성과 재발 방지를 위한 기록을 남기는 작업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김언경 이젠 기자용 가이드라인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언론 가이드라인이 필요할 때다. 무책임한 언론에 대해 욕만 할 것이 아니라 가짜뉴스를 걸러내고 언론을 감시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하며, 언론을 바로 보는 시각을 키워야 한다.
사회 문현숙 선임기자, 정리 신지민 기자
hyuns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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