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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거부 땐 다시 상담기관으로…'임신중지 시기 지연' 독소조항 될라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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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법·모자보건법 세부쟁점 살펴보니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최근 정부의 ‘낙태죄' 관련 형법, 모자보건법 개정 입법예고안과 관련해 “여성에 대한 처벌을 유지하고 건강권과 자기결정권, 사회적 권리 제반을 제약하는 기만적인 법안이므로 완전 폐지하라”고 촉구하며 땅바닥에 누워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최근 정부의 ‘낙태죄' 관련 형법, 모자보건법 개정 입법예고안과 관련해 “여성에 대한 처벌을 유지하고 건강권과 자기결정권, 사회적 권리 제반을 제약하는 기만적인 법안이므로 완전 폐지하라”고 촉구하며 땅바닥에 누워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지난 7일 정부가 입법예고한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에는 임신 주수에 따라 임신중지 허용 여부를 달리한 것 외에도,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 침해 논란을 부를 소지가 있는 쟁점 조항이 여럿 포함돼 있다. 의사의 진료거부권 명시와 상담 및 숙려기간 의무화, 미성년자에게 제3자 동의 요구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헌법재판소는 “임신한 여성의 안위가 곧 태아의 안위”이고, 임신중지에 대한 여성의 선택을 “자신이 처한 신체적·심리적·사회적·경제적 상황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한 결과를 반영하는 전인적 결정”이라고 명시했다. 하지만 정부의 법 개정안에는 이런 취지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여성계는 여성의 건강권을 보호하고 안전한 임신중지를 보장하기 위해 독소조항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①의사의 진료거부권·미프진 도입 정부는 모자보건법 개정을 통해 자연유산 유도약물을 허용해 “시술방법의 선택권을 확대했다”고 밝혔지만, 동시에 “의사의 개인적 신념에 따른 진료 거부를 인정”하는 예외규정을 뒀다. 특히 임신중지에 대한 ‘양심적 거부’를 법률로 허용하더라도 임부를 임신중지가 가능한 의료기관으로 이송할 의무를 의료인에게 부여해 해당 조항을 보완한 미국·스위스·노르웨이 등과 달리, 현행 정부안은 “임부에게 임신·출산 상담기관을 안내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양심적 거부를 한 의사에게 다른 의료기관으로 전원하도록 하는 의무를 지울 수는 없다’는 의료계 의견을 수용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숙고의 과정을 거쳐 의료기관을 찾은 여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칫 임신중지 시기를 지연시킬 수 있는 독소조항이 될 수 있다. 의사의 진료 거부 뒤 상담기관을 안내받게 되면, 의료기관과 상담기관을 계속 찾아다니느라 신속한 진료를 받기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행동’(모낙폐)은 8일 기자회견에서 “임신한 여성이 직장이나 학교에 다니고 있거나 다른 자녀를 키우고 있는 경우, 상담기관과 의료기관의 접근성이 취약한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경우, 관련 정보를 접하기 어려운 조건에 있는 경우 실질적으로 여성들의 건강권을 크게 침해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미프진 등 유산유도제 합법화를 위한 제반 환경 마련에 대한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데 대한 우려도 나온다. 박슬기 산부인과 전문의(‘언니들의 병원놀이’ 활동가)는 “산부인과 의사들조차 의대 과정에서 배우지 않아 유산유도제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는 상황에서 의사들의 의학적 판단의 정당성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지, 의사들에게 안전한 임신중지를 어떻게 교육하고 훈련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이 먼저 나왔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 ②사회·경제적 사유 추가, 상담·숙려기간 의무화 정부는 모자보건법에 규정된 임신 24주까지의 임신중지 허용 사유를 이번에 형법으로 옮겨 신설하겠다는 방침이다. 기존에 있던 예외적 허용 사유(강간·준강간에 의한 임신 등)에다 사회·경제적 사유를 추가하기로 했다. 사회·경제적 사유로 임신중지를 할 때는 국가가 지정한 ‘임신·출산 종합상담기관’에서 상담을 받고 24시간의 숙려기간을 거치도록 했다. 정부는 “상담·숙려기간을 거친 경우 사회적·경제적 사유가 있는 것으로 추정해 입증 관련 논란을 방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럴 경우 “여성의 선택에 국가의 허락이 필요하다”는 틀이 유지된다는 점에서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담 과정에서 입양·출산을 권유하는 등 편향적 정보를 제공할 우려도 있다. 박 전문의는 “지금도 ‘살인자’라는 낙인과 혐오를 견뎌야 하는 여성을 상담기관에서 또다시 가해하지 않을 안전장치가 전혀 없는 상황”이라며 “여성에게 필요한 상담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상담 및 숙려기간의 의무화는 이미 2015년 프랑스 등에서는 실효가 없다는 이유로 폐기된 제도다. ‘모낙폐’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유엔 자유권위원회, 세계산부인과학회 등에서도 거듭 폐지를 권고하고 있는 내용”이라고 비판했다. ■ ③만 16살 미성년자 입증 문제 정부 입법안은 만 16살 미만 미성년자가 임신중지를 해야 할 때 법정대리인의 폭행·협박 등 학대로 동의를 받을 수 없다면, 이를 입증할 수 있는 공적 자료를 상담사실확인서와 함께 제출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할 뿐 아니라 자기결정권의 성립 여부를 만 16살로 둔 마땅한 근거가 없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법정대리인의 폭행 등을 입증하는 방식으로 임시조치 결정서를 가져오도록 했는데, 이는 청소년이 부모를 아동학대로 신고해야 가능한 것”이라며 “임신중지를 위해 부모를 신고하는 절차를 마련하겠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미성년자가 불안감을 갖지 않고 더 안전하고 빠르게 임신중지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사후 건강관리에 대해 논의해야 하는데 이를 통제한다는 관점에서만 접근해 오히려 청소년 임부의 건강이 더 위험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아동복지법은 아동을 만 18살 미만으로, 청소년기본법은 청소년을 만 9살 이상 24살 이하로 본다. 형법상 미성년자는 만 14살 미만, 민법상 미성년자는 만 20살 미만이다. 만 16살을 기준으로 둬야 할 마땅한 의학적 사유도 없다. 김 부연구위원은 “의료법에서도 연령기준에 제한을 둬서 판단능력을 규정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미성년자의 임신중지에서 부모의 개입이 독려돼야 할 뿐 요구돼서는 안 된다”고 보고 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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