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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따라 흔들리는 '사법정의'…“아무도 미안하다 하지 않았다”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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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
외국인 범죄 처벌의 그림자

진범 대신 법정 선 나이지리아인
영문도 모른 채 체포, 구치소행
“아프리카인이라 당했다” 소송도

1심 무죄에도 못 풀려난 중국인
2심서 ‘모험’ 강행 끝에 풀려나

고양·군포 큰불 외국인 노동자
과잉, 졸속 수사 문제점 드러나

올해 4월23일 경기 군포 물류창고 화재 현장에서 감식이 진행되고 있다.(왼쪽) 2018년 12월18일 경찰의 고양 저유소 화재 사건 수사 결과에 대한 항의 집회가 열리고 있다. 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사진 연합뉴스
올해 4월23일 경기 군포 물류창고 화재 현장에서 감식이 진행되고 있다.(왼쪽) 2018년 12월18일 경찰의 고양 저유소 화재 사건 수사 결과에 대한 항의 집회가 열리고 있다. 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사진 연합뉴스
▶ 외국인 인구 5% 시대가 다가온다. 외국인이 저지른 범죄가 증가하는 것도 분명한 현실이다. 그만큼 ‘외국인 범죄’는 실재하는 문제다. 그러나 두려움과 편견 때문에 실재보다 크게 다가오는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 사법 시스템은 외국인 범죄에 효과적이면서도 공평한 대응을 하고 있을까? 죄지은 자는 반드시 벌을 받는 세상이 형사사법의 이상일 것이다. 동시에 “너희와 함께 있는 거류민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같이 여기라”(성경 ‘레위기’)는 공정함과 공평의 정신도 놓쳐서는 안 될 가치다. 여기 명백히 억울한 사람, 또는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낯선 땅에 사는 힘없는 이방인이어서 부당하게 대우받고 더 어려웠다고 주장한다. 다문화 사회를 향해 가는 한국에서 사법이 어떤 문제를 노출해왔고, 어느 방향으로 가는 게 바람직한지 짚어본다.
“아무도 미안하단 한마디를 안 했어요. 아무도.” 2012년 한국에 온 나이지리아인 ㅈ은 6년 전 충격이 아직 생생하다고 했다. 그는 “최악의 경험”을 묻고 넘어갈 수 없어 대한민국을 상대로 소송을 내 배상 판결을 받은 사람이다. 한국 거주 외국인으로서 드문 경험이다. 지난달 29일 기자와 만난 그는 하는 일이 뭐냐는 질문만큼은 “노가다”라고 한국말로 답한 뒤 사연을 털어놨다. 경찰도 검찰도 법원도 속았다? 광주 교회에서 숙식하며 날품팔이를 하던 ㅈ은 2014년 11월10일 함께 사는 동료한테 “파출소에서 너를 찾더라”라는 얘기를 들었다. 무슨 일인지 도저히 짐작되지 않았지만 파출소에 갔다가 경찰서로, 다시 수갑이 채워져 서울 성동구치소로 압송됐다. 날벼락 같은 일이었지만 왜 붙잡혔는지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한다. 엿새 뒤 찾아온 국선변호사는 ‘당신은 야간건조물 침입절도 혐의로 기소됐는데 재판에 불출석해 체포됐다’고 일러줬다. 그럴 만한 일이 전혀 없었다는 말에 놀란 변호사는 일단 지문을 채취해 수사자료와 대조해보자고 했다. 이후 조사에 배석한 통역도 ‘이 사람이 아닌데’라며 곧장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7개월 전 같은 통역이 조사에 참여한 이 사건 범인은 국적만 같을 뿐 ㅈ과 판이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진범이 조사받던 중 ㅈ의 외국인등록증 사본을 수사기관에 주는 바람에 엉뚱하게도 그가 법정에 서게 된 것이다. 진범을 애초 못 잡은 것도 아니고, 진범으로 조사받은 사람과 법정으로 보내진 사람이 다른 희귀한 사례다. 고국에서 법학을 전공한 ㅈ은 풀려나기까지 11일간 겪은 고통도 그렇고 사과도 받지 못한 게 억울해 소송을 냈다. 2017년 대한민국이 54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진범과 ㅈ의 신분증 얼굴 모습부터 달랐고, ㅈ이 자기는 잘못한 게 없다는데도 경찰이 신원 확인에 소홀했고, 영사접견권도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기자의 손을 가리키며 “나와 2년간 같은 시설에서 살다 떠난 진범은 피부색이 한국 사람과 비슷하고 키도 차이가 많이 난다”고 말했다. 흔히 나이지리아인이라면 짙은 색 피부를 떠올리겠지만, 현지에는 밝은색 피부를 가진 사람도 상당히 많다고 했다. 그는 “나이지리아에서는 외국인이 체포되면 바로 해당국 대사관에 통보한다. 내가 아프리카인이라 그런 취급을 받은 것이다. 한국은 밖에서 아주 존경받는 나라인데, 실망했다”고 말했다. 손해배상 소송을 대리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김지림 변호사는 “다른 것도 아니고 수사 절차라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2018년 10월8일 경기 고양시 덕양구 화전동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 저유소에서 공사 관계자 등이 화재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018년 10월8일 경기 고양시 덕양구 화전동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 저유소에서 공사 관계자 등이 화재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국선변호인의 모험 지난달 19일, 10개월 만에 구금에서 풀려난 중국인 ㅂ이 제주발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는 특수강간과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으나 8일 전 항소심에서도 특수강간 혐의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혐의가 인정되면 중형이 예상되는 사건에서 검찰이 이례적으로 상고를 포기했기에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 사건은 1심과 항소심 결과가 같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큰 반전이 전개된 재판이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제주 서귀포시에서 방 2개에 거실이 딸린 집을 빌려 살던 ㅂ은 지난해 12월 중국인 여성 ㄹ에게 방 1개를 임대해줬다. 그 이틀 전에도 중국인 부부에게 방 1개를 전대해준 그는 거실에서 생활하게 됐다. ㄹ에게는 동거남이 있었으나 그 남자는 나흘 만에 떠났다. ㄹ은 입주한 지 8일 만에 ㅂ이 자신을 흉기로 위협한 뒤 잇따라 성폭행했다고 고소했다. 1심은 특수강간 혐의에 ‘절차적’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피고인이 피해자의 수사기관 진술조서 증거능력에 동의하지 않아 피해자가 법정에서 다시 진술해야 했는데 ㄹ은 3월에 출국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은 검찰이 공소유지를 잘못해 흉악범이 법망을 빠져나가게 생겼다고 비난했다. ㅂ은 비록 1심 무죄로 구치소에서는 풀려났으나 도주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외국인보호소에 다시 갇혔고 출국도 금지됐다. 계속 구속 재판을 받는 것과 다름없었다. 검찰은 중국과의 사법공조로 피해자를 항소심 법정에 부르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했으나 그게 얼마나 걸릴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국선변호인으로 나선 성정훈 변호사는 통상적 재판이라면 택하지 않을 방법을 썼다. 피해자의 수사기관 진술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고 판단을 받아보자고 ㅂ을 설득한 것이다. 피해자가 계속 법정에 나오지 않는다면 1심과 같은 이유로 다시 무죄가 선고될 수도 있겠지만 중국과의 사법공조를 기다리다가는 구금이 마냥 연장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재판부도 앞서 이런 우려를 나타냈다. 그렇게 해서 광주고법 재판부는 피해자의 수사기관 진술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한 상태에서 심리를 진행했다. 결과는 역시 무죄였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ㅂ과 상당히 밀착한 관계였지만 이를 일부러 숨긴 것으로 보이고, 사건 정황이나 사건 당시 입었다는 상처 등에 관한 진술이 일관성이 없거나 객관적 상황과 모순된다고 판단했다. 또 경찰과 검찰은 피해자가 다툼의 목격자로 지목한 중국인 부부를 조사하지도 않았고, 범행 도구라는 흉기를 피해자가 들고나와 모텔에서 쓴 점도 석연찮다며 피해자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밝혔다. 아울러 전후 상황에 관해 피해자보다는 ㅂ의 진술이 사실과 부합하는 면이 있다고 했다. 성 변호사는 “피고인이 언제까지 갇혀 있을지 몰라 정면승부를 해야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피해자 주장대로 목격자가 정말로 있었다면 초동 단계부터 그들을 조사했어야 하고, 그랬다면 재판이 좀 더 원활하게 진행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2018년 10월10일 경기 일산동부경찰서에서 고양 저유소 화재 사건 피의자인 스리랑카 출신 노동자 디무두가 검찰의 구속영장 반려로 유치장에서 풀려나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10월10일 경기 일산동부경찰서에서 고양 저유소 화재 사건 피의자인 스리랑카 출신 노동자 디무두가 검찰의 구속영장 반려로 유치장에서 풀려나고 있다. 연합뉴스
언어 장벽에 방어권 근본적 한계
부실 통역에 오역 논란까지 가중
부실 초동수사는 진범만 돕는 꼴
일부 언론 반외국인 정서 부채질
범죄율 비교적 낮지만 공포 키워
저임노동 유입→정착 단계 변화
“한국사회 통합 정책 강화해야”
‘연기 없는’ 대마 사건 외국인 사건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일방 진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수사는 사건 실체 파악을 어렵게 하고 때로는 억울한 사람을 만들 수 있다. 특히 외국인들한테 형사처벌은 추방으로 이어지기에 더 ‘생사’가 달린 문제가 될 수 있다.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받은 이집트인 ㅁ의 경우가 그렇다. 그는 다른 외국인들과 함께 대마수지 연기를 흡입했다는 이유로 2017년 8월 서울서부지검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기소유예는 범죄사실은 인정되나 사안이 가볍거나 다른 참작 사유가 있다는 이유로 내리는 처분이다. 내국인이라면 사실상 불이익이 없어 처벌을 안 받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보기도 한다. ㅁ은 처지가 달랐다. 마약 범죄가 인정된 탓에 강제퇴거 위기에 몰렸다. 결국 헌재에 호소해 △제3자 진술을 근거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으나 본인은 현장에 있지 않았다는 점과 △사건 시점으로부터 11개월여 뒤 모발과 소변 검사에서 대마 성분이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기소유예를 취소받을 수 있었다. 이 사건은 이 밖에도 이상한 점이 여럿이었다. 대마수지를 가져왔다는 공범은 조사도 없이 강제출국당한 상태였다. 공범들 간 진술이 모순되는데 대질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를 공범으로 지목한 ㅇ은 문제의 사건 시점으로부터 11일 뒤에도 자신과 제3의 인물이 대마수지를 함께 흡연했다고 진술했으나 그 내용은 제3의 인물의 휴대전화 발신 내역과 어긋났다. 이 때문에 ㅇ은 대마수지를 흡연했다고 자백했는데도 혐의없음 처분을 받는 희한한 일이 발생했다. 헌재는 재판관 전원일치로 “이 사건 기소유예 처분에는 그 결정에 영향을 미친 중대한 수사 미진 또는 증거 판단의 잘못이 있으며, 그로 인해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됐다”고 판단했다. 헌재 사건을 대리한 법무법인 동인 공익위원회의 김광훈 변호사는 “기소유예는 상당히 가벼운 처분으로 알려져 있지만 외국인들에게는 생존이 걸린 문제일 수도 있다. 수사기관의 깊은 고민과 고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올해 4월23일 경찰과 소방당국이 경기 군포 물류창고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4월23일 경찰과 소방당국이 경기 군포 물류창고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양에서 군포까지 현재 외국인이 방화범으로 지목된 큰불과 관련한 재판이 2건 진행되고 있다. 하나는 2018년 10월 서울 서쪽 하늘을 시커멓게 덮은 고양 저유소 화재 사건이다. 피해액이 1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 이 사건은 발생일로부터 2년을 넘겨 이달 말에나 1심이 선고될 것으로 예상된다. 스리랑카 출신 노동자 디무두가 호기심에 주워 날린 풍등이 발화 원인으로 지목된 화재는 애초 간단한 사건처럼 보였다. 하지만 힘없는 외국인 노동자한테 모든 책임을 씌우는 것은 지나치다는 여론이 일었다. 검찰은 경찰이 ‘중대한 과실’이 있었다며 중실화 혐의로 신청한 구속영장을 반려했다. 이후 검찰은 단순 과실로 인한 화재로 보고 벌금 1500만원이 법정 최고 형량인 실화 혐의로 디무두를 기소했다. 변호인단은 나아가 무죄 변론을 펴고 있다. 풍등이 유류탱크 주변 잔디밭에 화재를 일으켰더라도 디무두에게 유류탱크 화재에 대한 예견 가능성까지 존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또 정부 산하기관 조사에서는 탱크가 제대로 밀봉되지 않아 누출된 인화성 가스가 상부에 정체된 것이 주요 문제로 지목됐다고 밝혔다. 디무두를 대리하는 최정규 변호사는 “바로 인접한 탱크 2기는 엄청난 폭발과 화염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며, 구조적 관리 부실이 아니라 디무두에게 형사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논란은 적용 혐의나 유무죄 다툼에 그치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경찰이 디무두를 조사하며 123회에 걸쳐 ‘거짓말하지 마라’ ‘거짓말 아닌가’라고 몰아붙인 것을 정상적 신문이 아니라 자백을 강요하고 진술거부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경기 군포의 한 물류창고에서도 올해 4월 외국인 노동자가 방화범으로 지목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튀니지 국적인 그는 가연물질 부근에서 담뱃불을 제대로 끄지 않아 629억원어치의 재산 피해를 입힌 혐의(중실화)로 구속 기소됐다. 그는 불이 나기 19분 전 발화 지점 부근에 담배꽁초를 버린 것으로 확인됐지만, 수원지법 안양지원은 지난달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담뱃불처럼 불꽃이 없는 무염화원은 길게는 10시간 뒤에도 발화하고, 1~3시간 사이에 발화하는 경우가 55%에 이른다는 게 전문가 증언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발화 시점에서 1시간 안쪽으로 다른 네 사람도 몇 차례 담배를 피우거나 담배꽁초를 버린 게 확인됐기에 검찰이 기소한 사람을 범인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검찰은 항소했다.
1992년 ‘파키스탄 노동자 살해 사건’ 용의자로 체포된 파키스탄인들. 문화방송 화면 갈무리
1992년 ‘파키스탄 노동자 살해 사건’ 용의자로 체포된 파키스탄인들. 문화방송 화면 갈무리
“난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요” 외국인 사건들을 다뤄온 변호사들은 오판, 부실 조사, 강압 수사의 배경에 제도적 허점, 편견, 수사기관 편의주의가 있다고 지적한다. 언어 장벽은 특히 사법 영역에서는 너무 높은 벽이다. 어렵고 생소한 법률 용어와 제도에는 내국인들도 애를 먹는다. 고양 저유소 화재 사건에서도 통역이나 조서 기록을 두고 논란이 생겼다. 조서에는 디무두가 근처에 저유소가 있었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던 것처럼 간단히 적혀 있지만, 진술 녹화 장면을 보니 몇 차례 부인하는 취지로 진술하다 질문이 끈질기게 이어지자 마지못해 긍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또 경찰은 통역을 상대로 ‘피의자가 거짓말을 하는 부분이 있던가요’ 등의 질문으로 참고인 조서를 작성했다. 디무두와 변호인단은 “통역이 수사기관의 편의에 치우칠 때 외국인 피의자 입장에서는 ‘통역을 받을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할 우려가 높다”며 인권위에 추가 진정을 제기했다. 난민 신청 사건에서는 고의로 추정되는 대형 오역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2015~2016년 아랍권 출신 난민 신청자들의 면접조사 내용에는 “신청서 내용은 거짓이다. 인터넷 보고 베꼈다”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한국에는 돈 벌러 왔다”는 식의 판박이 진술이 담겼다. 신청자가 스스로 난민 자격이 전혀 없다고 자복하는 황당한 내용이었다. 통역인이 신청자들이 말한 것과 배치되는 내용을 진술서에 담도록 한 사실이 일부 탈락자들이 낸 행정소송 과정에서 밝혀졌다. 피해자가 수십명으로 조사됐다.
‘이태원 햄버거 가게 살인 사건’ 진범으로 지목된 미국인 아서 존 패터슨이 사건 발생 18년 만인 2015년 9월 미국에서 송환돼 인천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인천공항/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이태원 햄버거 가게 살인 사건’ 진범으로 지목된 미국인 아서 존 패터슨이 사건 발생 18년 만인 2015년 9월 미국에서 송환돼 인천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인천공항/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한 마디 한 마디가 당사자의 운명을 가를 수 있는 형사사건에서 오역이나 부실 통역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법원은 교육과 평가를 포함한 통역·번역인 인증제를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외국인이 처음 형사사법 절차를 밟는 경찰 등 수사기관 단계에서는 부실 통역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경찰에서는 민간인 통역풀에 등록된 통역인들이 경찰서별로 요청이 있을 때 시간당 수당을 받고 통역을 해준다. 통역인이 조사자와 피조사자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상태에서 객관적 입장을 견지하기보다는 보조 수사인력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이지은 교수의 논문 ‘경찰통역 실태와 경찰관의 인식 조사 사례 연구’에는 2013년 외국인 사건 관련 경찰관 3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내용이 실려 있다. 통역인들의 전반적 통역 기술 평가를 물었는데 응답자 27명 중 14명만이 ‘신뢰할 만하다’고 답했다. 소수이긴 하지만 경찰관 자신이 수사관과 통역인을 겸했다는 경우도 있었다. 26명 중 15명은 ‘경찰관의 요청이 있을 때 통역인은 의견을 표시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교수는 “사법 통역인은 원발화 내용을 충실히 전달하는 역할에 머물러야 할 뿐, 절대로 자신의 의견을 더하거나 제시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신문조서 내용을 제대로 검토할 수 없는 것도 문제다. 자기 답변이 제대로 기록됐는지 확인하고 날인해야 하는데, 외국인들은 통역이 한 줄씩 확인해주지 않고 그저 ‘문제없다’고 하면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엉뚱하게 절도범으로 몰렸던 나이지리아인 ㅈ은 “외국인들은 한국 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한국어로 써 있는 서류에 그냥 사인만 하라는 식”이라고 했다. 이 밖에도 외국인들이 형사사법 절차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이유들이 있다. 우선 주거 부정을 이유로 구속될 확률이 내국인보다 높다. 구속을 피하더라도 강제퇴거 대상이 될 수 있다거나 도주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되는 보호처분을 받는 경우가 많다. 앞에 소개한,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도 보호소에 다시 갇힌 중국인이 그런 경우다. 조사 과정의 오역이나 인권침해 방지를 위해 전면적 진술 녹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차장인 조영관 변호사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수사 과정에서 조력을 받는 게 쉽지 않은데, 농촌이나 도서 지역에서는 수사관의 인권 의식이 높지 않아 더 곤란하다”고 했다. 공무원이 불법체류자를 발견하면 지체 없이 신고해야 한다는 통보 의무제도 사실 규명에 장애가 될 수 있다. 중대 범죄 피해자는 이 제도에서 예외이지만, 적법한 체류 자격이 없는 외국인 목격자는 참고인 조사를 피하려 하기 때문이다. 외국인 사건은 가해자, 피해자, 목격자 모두 외국인인 경우가 많다.
중국동포한마음회, 귀한중국동포권익증진위원회 등 중국에서 온 동포 단체 회원들이 2017년 8월 영화 <청년경찰>에 중국 동포와 대림동을 비하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며 상영 중단과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동포한마음회, 귀한중국동포권익증진위원회 등 중국에서 온 동포 단체 회원들이 2017년 8월 영화 <청년경찰>에 중국 동포와 대림동을 비하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며 상영 중단과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초기 패착의 기억…외국인 5% 시대에는? 1990년대 이후 산업인력 수용 정책 등으로 외국인 유입이 본격화하면서 이들에 의한 범죄 문제도 따라붙었다. 불행히도 한국 사법 시스템은 중요 사건에서 패착을 거듭했다. 1992년 파키스탄 노동자 살해 사건에서 흉기를 휘두른 주범은 무기징역을 받고, 영문도 모르고 현장에 따라갔던 2명이 사형을 선고받았다는 논란이 일었다. 한국 정부는 1999년 재심 대신 사면으로 논란을 마무리지었다. 1997년 발생한 이태원 햄버거 가게 살인 사건은 20년이 지나고서야 주범이 바뀐 판결이 확정됐다.
전체 인구 대비 체류 외국인 비중이 조만간 5%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5%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규정하는 다문화사회의 기준이다. 하지만 외국인을 예비 범죄자쯤으로 치부하는 것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가는 시각도 여전하다. 외국인 범죄 문제를 다룬 올해 1월 한 신문 기사에는 ‘검거율은 4년 연속 하락해 1.2%’라는 부제가 붙었다. 2016년 2.1%였던 ‘검거율’이 이렇게나 떨어졌다는 내용이다. 이 기사가 뜻하는 ‘검거율’이란 전체 체류 외국인 대비 피검거자 규모다. 기사는 “검거 인원 증가 폭에 비해 체류 외국인 증가가 더 빠른 속도로 이뤄지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고 했다. ‘외국인 범죄율이 줄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통계를 가지고 검거율이 떨어진다는 식으로 논리 비약을 한 셈이다. 체류 외국인 범죄율은 실제로 내국인보다 낮다. 외국인들이 반드시 선량해서라기보다는 비자 발급 단계에서 어느 정도 검증을 받고, 체류 자격 유지를 위해 조심하기 때문이다. 외국인 범죄를 경계하는 목소리는 많지만, 공정한 법 집행으로 진범을 벌하고 피해자를 구제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부실 조사와 사법 판단의 오류는 억울한 사람을 만들고, 진짜 범죄자는 웃게 만들고, 한국 사법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 전문가들은 좀 더 넓은 시야의 정책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조영관 변호사는 “피해자가 외국인인 경우도 많다. 외국인도 치안 수요자라는 인식을 갖고 국내법과 범죄 예방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지선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외국인 유입은 저임 노동력으로 시작됐는데 이제 정착 단계로 접어들었기에 이에 맞는 정책이 필요하다. 외국인 밀집 지역 슬럼화 방지, 내국인과의 교류 강화, 피해자 지원, 편견 조장 보도에 대한 대책이 형사정책적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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